북한은 지난 2012년 12월 은하 3호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하고 9일 뒤 평양 목란관에서 로켓 발사 성공에 기여한 과학자, 기술자 등을 불러 모란봉악단 공연 등 축하 행사를 열었다. 공연장 오른쪽 끝에 은하 3호 모형이 세워져 있었는데 왼쪽 끝에는 이보다 1.3배쯤 큰 대형 로켓 모형이 서 있었다. ‘은하 9호’라는 명칭이 붙어 있었다.
그 뒤 북한 매체에서 은하 9호를 언급한 사례가 잇따랐다. 노동신문은 이듬해 1월 “김정은 동지가 가리킨 대로 은하 9호까지 단숨에 나가라고 고무하시는 장군님(김정은)의 다정하신 음성도 귓전에 들려왔다”고 보도했다. 그 뒤 2016년 2월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에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광명성 4호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장거리 로켓은 은하 9호가 아니라 은하 3호와 같은 것이었다. 그 뒤에도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은하 9호는 열병식에 등장하거나 발사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은하 9호는 보여주기식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사실 북한이 은하 3호보다 크고 강력한 장거리 로켓을 개발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광명성 4호는 최대 무게 200㎏ 정도에 불과해 위성으로서의 기능에 한계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가장 아쉬워하는 분야 중의 하나인 정찰위성은 보통 무게가 1t 이상이다. 로켓이 무게 1t 이상의 화물을 수백㎞ 상공 저궤도에 올릴 수 있어야 정찰위성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보고를 통해 ‘천기누설’ 수준의 각종 전략 신무기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핵심 5대 과업이다. 여기엔 극초음속 미사일, 고체연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여러 개의 핵탄두를 서로 다른 목표물로 유도하는 다탄두(多彈頭) 개별유도기술(MIRV), 핵 추진 잠수함 및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군사정찰위성, 무인정찰기 등이 포함됐다. 당시 김정은은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 단계에 있으며 각종 전자무기들, 무인 타격장비들과 정찰탐지 수단들, 군사 정찰위성 설계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이때 김정은이 언급한 것 중 극초음속 미사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등은 지난해 실제 시험발사가 이뤄졌다.
정찰위성의 경우 북한이 이를 궤도에 쏘아 올리려면 동창리 발사장에서 은하 9호급(級), 즉 은하 3호보다 강력한 신형 장거리 로켓을 사용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이 공개한 모형은 상당수가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은하 9호급 신형 장거리 로켓 등장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북한 무기 전시회에서 첫 공개된 극초음속 미사일, 소형(미니) SLBM 모형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실제로 시험발사됐다. 북한이 김정일 생일 80주년(2월 16일)이나 김일성 생일 110주년(4월 15일)에 맞춰 신형 장거리 로켓으로 정찰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다면 군사·과학적 효과와 북한 주민 내부 결속 등 정치적 효과까지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장거리 로켓이 ICBM으로도 전환될 수 있는 효과를 거두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국정원도 국회 정보위 보고를 통해 동창리 발사장에서 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한 ICBM(장거리로켓) 발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밝혔다. 올해로 예정된 국산 우주발사체 누리호 2차 발사도 김정은의 강한 대남 경쟁의식을 자극할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이 천기누설했던 5대 전략무기를 비롯, 자신들이 세운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모양새다. 극초음속 무기 등 상당수 무기들은 개발 속도가 너무 빨라 국내외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러면 미 본토를 실제 타격할 가능성이 희박한 북한이 이런 전략무기들을 개발하는 이유는 뭘까? 북한은 유사시 미 본토와 괌, 하와이, 주일미군기지 등으로부터 오는 증원(增援) 전력을 가장 두려워한다. 화성-15형 등 핵탄두 ICBM으로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과시해 증원 병력과 장비를 한반도로 보내기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다. 괌이나 주일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두고 있는 화성-12형 및 북극성-2형 중거리 미사일, 장거리 순항 미사일, 사거리 1000㎞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 SLBM 등을 개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와 함께 변칙 기동을 하는 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 600㎜ 초대형 방사포 등을 섞어쏘기 한다면 한·미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하면서 주한미군 평택·오산기지, 계룡대 등 지휘시설, 주요 공군기지 등을 초토화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KN-23 등 신형 미사일은 전술핵탄두 장착 능력도 갖췄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제 유사시 핵사용 위협으로 한·미 양국 군의 반격을 견제하면서 필요할 경우 핵탄두로 한·미 양국 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이는 중국이 대함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순항미사일 등으로 아·태 지역에서 미 항모 전단 등의 활동을 견제하는 A2AD(반접근지역거부) 전략과 유사하다. 북한의 각종 신무기 개발이 ‘북한판 A2AD전략’이라 불리는 이유다. 핵보유국 인정도 북한이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다.
이처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발등의 불’이 됐고 날로 고도화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대응에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들도 각종 안보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병사 월급 인상 등 포퓰리즘에 더 빠져있는 듯하다. 북한은 그동안 전략적 판단에 따라 속도 조절을 해왔을 뿐 5대 전략무기를 비롯, 기본 목표를 포기하거나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기 정부, 군 통수권자는 무엇보다 북한의 속셈을 꿰뚫어보고 현 상황에 대한 절박감과 위기의식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