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들은 지금쯤 달콤한 신혼 꿈에 젖어 있을 것이다. 1년에 한 번 만나 신방을 차리는 시간인 까닭이다. 이들의 단꿈은 6월 중순쯤 알이 되어 나온다. 알이 나오면 부부는 다시 헤어진다. 알을 낳느라 에너지를 소모한 암컷이 영양을 보충하러 바다로 나가고 수컷이 알을 지킨다.
바다표범, 첫 번째 펭귄 가만히 두고 안심하고 마구 뛰어들 때 사냥 개시 악어도 강 건너는 중간 무리 노려
어정쩡한 상품은 살아남기 어려워 변화의 시대 ‘적당히·대충’하면 안돼 |
그런데 다들 푸른 바닷물 앞에서 서성거릴 뿐 선뜻 뛰어들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거칠고 차갑다는 남극의 바다 때문일까? 아니다. 저 푸른 바다 밑 어디선가 녀석들을 호시탐탐 기다리는 바다표범이 있을 수 있어서다. 무슨 일 있겠느냐 싶어 별 생각없이 뛰어들었다가 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런데 이런 미적거림을 뚫고 첨벙 뛰어드는 녀석이 있다. 모험을 무릅쓴다는 일명 ‘퍼스트 펭귄’이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용기가 있어서 위험을 감수할까? 워낙 용기 있게 뛰어들다 보니 이제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용기 있는 녀석일 수도 있지만 원치 않게 영예를 얻는 녀석들도 꽤 있다. 펭귄들은 계속 몰려드는데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니 얼음 위는 갈수록 붐비는 상황이 되고, 먼저 들어가지 않으려는 몸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는 와중에 밀리다 못해 어떤 녀석이 의도치 않게 가장 먼저 입수하는 영예를 안는 것이다(세상에 이런 일이~). 생각하기도 싫은 무서운 입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원치 않게 들어갔으니 녀석은 이제 죽은 목숨일까?
이 역시 생각과 다를 때가 많다. 용감하게 들어가든 밀려서 들어가든 가장 먼저 들어간 펭귄은 의외로 멀쩡한 편이다. 의외로 공격당하지 않는다. 운이 좋은 걸까?
바다표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유가 명확해진다. 바다표범이 첫 번째로 뛰어드는 녀석을 잡으려고 달려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걸 눈앞에서 본 다른 펭귄들은 절대로 뛰어들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처음에 들어온 한 녀석을 사력을 다해 잡아야 한다. 잡지 못하면 그날 사냥은 수포로 돌아가니 말이다. 그렇다고 먼저 들어온 펭귄이 쉽게 잡히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노련한 바다표범들은 웬만해서는 퍼스트 펭귄을 공격하지 않고 근처 얼음덩어리 뒤에 숨어 끈기 있게 좀 더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 녀석이 기다리는 좀 더 좋은 기회란 안전을 확인한 펭귄들이 우르르 바다 속으로 뛰어들 때다. 특히 펭귄들이 3분의 1쯤 들어왔을 때가 최고의 기회다. 이쯤 되면 펭귄들은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뒤에 있는 펭귄들이 앞에 있는 녀석들에게 빨리 들어가라고 밀쳐 대는 혼란이 벌어진다. 이렇게 정신없을 때가 바다표범에게는 최고의 기회다.
#전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카 동부 세렝게티 초원의 북부를 흐르는 마라강은 초식동물들에겐 죽음의 강이지만 이곳에 사는 악어들에겐 기회의 강이다. 초식동물들이 1년에 두 번 이 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물고기만 먹어온 악어들에겐 다시없는 포식의 기회다. 그래서 이 강에 도착한 수많은 초식동물은 섣불리 뛰어들지 못한다. 악어 역시 섣불리 공격하지 않는다. 남극의 바다표범이 그렇듯 첫 번째 기회를 참을성 있게 보내고 무리들이 안심하고 강을 건너는 그때를 노린다.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을 때 들이친다.
이 두 상황에서 보듯 포식자는 어중간하게 나서는 녀석들을 노린다. 성공 기회가 높고, 실패해도 뒤쪽의 다른 녀석들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얼핏 맨 앞이 가장 위험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중간하게 따라나서는 녀석들이 가장 위험하다. 안전하게 묻어가려는 녀석들이 거꾸로 가장 크게 위험에 노출된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별 일이 없을 때 ‘어중간’은 효과적이다. 투입보다 효과가 더 크다. 하지만 변화의 시대에는 다르다. 반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공부를 어중간하게 한 학생은 문제를 조금만 비틀어도 헤맨다.
어중간한 사업가나 상품은 경기가 조금만 삐끗해도 타격을 입는다. 변화에 취약하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노력하는데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 될 듯 될 듯하다 안 되다 보니 자존감은 엉망이 되고 손해는 커진다. 불확실성 시대에 중산층이 사라지듯 직장에서 적당히 잘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불행과 위험은 어중간함을 노린다.
전쟁이 일어나면 중간은 없다. 아군과 적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변화가 격렬한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잘하거나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다. 적당히, 어정쩡, 대충…. 이런 행동은 더 이상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이미 최고의 인재를 뽑아 그들에게 많은 권한과 보수를 주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전환기에 어중간함을 선택하는 건 사라짐을 선택하는 것이다.
퍼스트 펭귄에 빗대어서 설명한 것이 참신하고 이해가 잘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