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새 정부에 역발상 기대, 한반도 평화 정책 펼쳐보라 ”

통일부 장관으로 ‘마지막’ 기자간담회
“독일처럼 일관되고 긴 호흡의 통일정책 펼쳐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우리가 계속 가야할 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6일 “정권교체를 넘어 지속된 서독의 대동독정책이 통일독일을 이룬 것처럼 우리도 대통령의 임기와 정권의 변동을 넘어 더 일관되고 긴 호흡으로 대북정책, 통일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인영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1시간 15분 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결국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와 여러 현안을 평화롭게 풀어나가야 하는 우리로선 문이 열리고, 해법을 찾을 때까지 시행착오와 난관을 넘어 계속 도전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장관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일각에서 ‘총체적 실패’로 단정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합당하지도 않다”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포괄적인 마스터플랜이며 계속해서 우리가 걸어나가야 할 길이자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비롯해 북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 관여 노력이 없었다면 2018년 1월 이후 지난 4년 4개월의 공간은 2017년보다 어쩌면 더 큰 갈등과 대결이 지속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 장관은 이어 “새 정부가 역발상을 하면 좋겠다. 보수정부라서 대결적인 정책기조를 펼칠 것이라는 기대, 예상에서 벗어나 역발상으로 평화를 위해 정책을 펼쳐보면 어떤가라는 제안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곤 “다음 정부가 초기에 집중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평화로 돌리는 노력에 성공해야만 장기간 대치로 어긋나는 정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핵시험 준비 징후가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이 장관은 “조짐이 발견된다면 여기서 멈춰져야 한다”며 “그러려면 다음 정부가 적극적으로 평화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대북·통일정책을 공식적, 공개적, 대중적 영역에서 종합하고 조정하는 것은 통일부만의 고유한 역할”이라며 “북한인권이나 탈북민 정착 지원도 매우 중요한 업무 영역이지만 한발 더 나아가 북핵문제 해결과 항구적 평화정착,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인도·개발·교류 협력에서 호혜적·평화적 협력을 통한 통일기반 조성 등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위한 정책이 통일부에 의해 의연하게, 일관되고 또 충실하게 추진돼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5월10일 새 정부 출범을 한 달 여 앞두고 이뤄졌다. 이 장관은 “미리 고별인사를 드린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고 역사가 저에게 맡긴 몫을 정성껏 해나간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임하고 완주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2020년 북의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6월16일) 직후인 7월27일 취임식 없이 업무를 시작해 지난 1년 8개월 여에 걸쳐 한반도 평화의 후진을 저지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쉼없이 모색해왔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기자간담회 전문

1.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이 아마도 제 임기 중에 마지막 출입기자단 간담회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가 장관으로 있었던 20개월 좀 넘는 시간, 변함없이 애정 주시고 관심으로 지켜봐주신 점에 대해서 먼저 감사 말씀 드립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도 해주셨습니다. 그것조차도 기자단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 덕에 저희가, 빈자리를 좀 더 잘 채울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와 통일부가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족했던 점은 오롯이 장관이었던 저의 책임이고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일 해주셨던 우리 통일부 직원들은 기자단 여러분들께서 계속 격려해주시고 많은 응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단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저와 간담회의 자리도 갖곤 하셨었지만, 사실은 남북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처럼 남과 북을 오가는 행사, 그리고 남북간 교류 협력의 생생한 현장에서 더 많은 취재 기회를 제공해 드릴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에 대해서 통일부 장관으로서 저 역시 못내 아쉽고 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머지않아 통일부를 떠나겠지만 기자단 여러분들께서는 평화와 통일의 현장에서 계속 남아 한반도 평화를 몸소 폭넓게 직접 경험하시고 남북 교류와 협력의 생생한 소식을 우리 국민들께 전해주실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존경하는 출입기자단 여러분, 이제 한 정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난 우리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책의 온전한 평가를 위해서는 특정 시점이나 일면만이 아니라 모든 과정과 결과, 그것을 둘러싼 구조와 환경까지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일각에서 “총체적 실패”로 단정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합당하지도 않다 이렇게 말씀 드립니다. 현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은 북한의 핵 실험과 ICBM 발사와 말의 전쟁이 일어났다 이렇게 일컬을 만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었고, 적대적인 언사가 일상적으로 난무하던 위기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북한을 상대하여 평화로운 한반도, 핵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목표로, 평화공존, 공동번영의 원칙을 통해 대화와 협상을 시도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4년 4개월 동안은 그러한 위협을 북한 스스로 내려놓도록 이끌기도 했습니다. 또한 「9.19 군사합의」의 이행으로 군사적으로 가장 예민했던 남북접경지역에서 우발적 충돌이 거의 사라지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 특히 접경주민에게는 무척이나 절박하고 절실했던 실질적인 평화의 진전이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우리 대한민국의 주도로 또, 남북이 스스로의 의지를 모아서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하여 주변국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한반도 정세의 ‘판’을 크게 움직여본 것 또한 우리 평화의 역사에서 분명한 진전이었고 전례 없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 이 순간과는 달리 한반도 정세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전쟁위기와 군사적 긴장은 보다 완화되었으며,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선진국의 지위를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만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비롯해, 북한에 대한 우리정부의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 관여 노력이 없었다면 2018년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개최되기는, 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로 이어진 북한의 모라토리움 선언과 판문점선언, 싱가포르 북미회담 대신에 그 4년 4개월의 공간은 2017년보다 어쩌면 더 큰 갈등과 대결이 지속되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만약 이런 초긴장의 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까지 맞아야 했다면 우리가 GDP 세계 10위까지 진입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그 속에서 우리 국민이 받았을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단순히 ‘실패’라는 일각의 이분법적 언어로 귀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와 여러 현안들을 평화롭게 풀어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문이 열리고, 해법을 찾을 때까지 시행착오와 난관을 넘어, 계속 도전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포괄적인 마스터플랜이며 계속해서 우리가 걸어나가야 할 길이고, 과정입니다. 지난 4년 4개월의 경험과 교훈을 새로운 100년의 평화로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정권 교체를 넘어서도 지속되었던 지난 서독의 대동독 정책이 통일 독일을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도 대통령의 임기와 정권의 변동을 넘어서 더 일관되고 긴 호흡으로 대북정책, 통일정책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런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물론,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고 어떤 경로를 지나야 할지도 알 수 없겠지만 그 길의 끝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 통일에 다다를 때까지는 우리는 매순간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존경하는 기자단 여러분, 이 과정에서 통일부가 통일부다움을 찾아가는 노력도 계속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달 전 통일부 창설 기념사에서도 언급했었지만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은 우리 헌법의 명시된 국가의, 대한민국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통일부는 바로 그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가치와 사명을 실현하는 주무부처입니다. 대북, 통일 정책을 공식적, 공개적, 대중적 영역에서 종합하고 조정하는 것은 우리 통일부만의 고유한 역할입니다. 통일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당장은 멈춰있는 분야의 업무일지라도 통일부는 미리 준비하고 소홀함 없이 일 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대패질을 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 있다는 인내와 지혜도 배우게 됩니다. 북한 인권이나 탈북민 정착지원 등도 매우 중요한 업무 영역이지만,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북핵문제 해결과 항구적 평화정착,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인도협력, 개발협력, 교류협력에서 호혜적이고 평화적인 협력을 통한 통일기반 조성 등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위한 정책들이 우리 통일부에 의해서 의연하게, 일관되고 또 충실하게 추진되어 나갈 수 있기를 저는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4. 출입기자단 여러분, 전에 제가 남북관계를 이어달리기에 빗대어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빛나는 주자도 아니었고, 박수를 받을만한 역전극을 펼쳐보지도 못했습니다. 또, 야구 경기로 표현하면 성과를 만들지 못하고, 승부도 내지 못한 채 마무리 투수의 역할로 끝난다는 그런 안타까움 섞인 평가들이 주변에서 종종 들려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마운드에 올라서야했던 그 시점,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 시점은 저의 정치적 실익이나 승패에 대한 헤아림을 넘어서서, 한반도에 조성된 평화의 위기, 이것을 누군가는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만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무엇이 잘 될 것 같다, 이런 기대감이 아니라 누군가는 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런 절박감에서 저는 나섰고, 그 절박감이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남북관계 경색에 코로나까지 겹친 현재의 여건에 저 또한 여러가지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고 역사가 저에게 맡긴 몫을 정성껏 해나간다는 기본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임하고 완주하겠다는 말씀, 마지막으로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노고까지 더해서 여러분께 거듭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통일부 출입기자단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그리고 행운을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가 더 큰 평화로 나아가는 그 길 어딘가에서 여러분 모두를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미리 고별인사까지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출처) : 이제훈, 이인영 “새 정부에 역발상 기대, 한반도 평화 정책 펼쳐보라 ”, 한겨레, 2022-04-06 15:02:00

댓글 남기기

회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