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북핵수석대표가 4일(현지시간) 북한의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추진하기로 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ㆍ러시아가 막아설 게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ICBM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둔 의무 조항도 힘을 못 쓰는 가운데 중ㆍ러가 대북 압박에 동참할 실질적 여건을 만드는 게 관건이란 분석이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회담을 마친 뒤 취재진 앞에 선 모습. 뉴스1.
4년 전 만든 방아쇠 당기려 했지만…
유엔은 2017년 11월 북한의 ICBM ‘화성-15형’ 발사에 대응해 채택한 결의 2397호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ICBM을 쏠 경우 대북 원유ㆍ정유 반입을 더욱 제한하도록 결정한다“(28항)고 명시했다. 북한이 특정 도발을 할 경우 즉각 적용한다는 뜻에서 ‘트리거(triggerㆍ방아쇠)’ 조항으로도 불린다.
특히 해당 조항의 서술어는 ‘decide(결정하다)’라는 표현으로 명시됐는데, 이는 결의에서 권고 사항을 나타내는 표현인 ‘call upon(촉구하다)’ 등과 달리 법적 구속력을 부과하는 의무 조항의 성격이다. 모든 회원국은 이를 따를 의무가 발생한다.
2017년 11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97호의 28항. 밑줄은 기자가 표시. 결의안 캡처
하지만 지난달 24일 북한이 4년 4개월만에 ICBM에 쏘아올렸는데도 안보리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다. 트리거 조항을 발동하려고 해도 별도의 결의 채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의 ICBM 발사 이튿날 소집된 안보리 회의에선 트리거 조항 실행은 고사하고, 공동 조치 중 가장 낮은 수위의 언론 성명조차 중ㆍ러가 반대하는 바람에 도출하지 못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노규덕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조만간 현재 방미 중인 류샤오밍(劉曉明)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도 만나 공동 대응을 설득할 계획이지만, 성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진아 한국외대 LD학부 교수는 “현 대북 제재를 더욱 옥죌 방법은 제재 대상의 품목을 늘리는 방안 정도인데 중ㆍ러는 이미 (2019년 12월, 2021년 10월) 안보리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한 만큼 갑자기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북ㆍ중ㆍ러가 똘똘 뭉쳐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에게 이탈 여지를 제공하는 잘못된 신호를 주려고 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한 회의가 열린 모습. AP Photo/Bebeto Matthews. 연합뉴스.
2017년엔 어떻게 움직였나
북한의 전통적 우방인 중ㆍ러가 안보리의 대북 대응에서 장애물 역할을 한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7년엔 한 해에만 네 차례(2356호ㆍ2371호ㆍ2375호ㆍ2397호)의 제재가 채택됐다.
당시는 북한이 워낙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 고강도 도발을 거듭하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이는 ‘북한을 향해 어떤 행동이든 불사할 수 있다’는 식의 트럼프식 ‘미치광이 전략‘이 효과를 본 측면이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이 갖고 있는 대중ㆍ대러 레버리지를 북핵 대응에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인 2017년 4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 중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승인했다. 토마호크 미사일에 맥을 못 추는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의 모습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량 국가에 대해서는 군사적 행동도 선택지에서 제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그 자체로 북ㆍ중에 경고가 됐을 거란 분석이 나왔다.
그는 같은 해 12월엔 북ㆍ중 석유 밀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트윗을 통해 “중국이 현행범으로 딱 걸렸다”고 저격했다. 이어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인내심이 다해간다”며 “중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미국을 돕지 않으면, 그간 내가 중국에 대해 하고 싶다고 했던 일들을 정말로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제재의 큰 구멍으로 불리는 중국을 향해 ‘북한의 뒷배를 봐줄 경우 무역 등 다른 문제로 압박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장쥔(張軍) 중국 주유엔대사가 발언하는 모습. 그는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해 중국 당국자로는 2017년 11월 이후 약 5년만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미국의 책임을 지적하고 유엔 안보리의 활동에 불만을 제기하는 등 사실상 북한을 감쌌다는 지적이다. AP Photo/Bebeto Matthews. 연합뉴스.
코너로 몰고 기회비용 높여야
결국 바이든 행정부에서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가 가능하려면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하지 않을 경우 지불할 ‘기회 비용’을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을 비호하고 버티다가는 더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리 결의 의무까지 사실상 저버리는 중ㆍ러에 대해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실질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방법도 있다.
한·미 차원에서는 북핵 대응을 위해 미국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 확장 억제 강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군사적 억지력 강화 조치는 북한을 노리는 동시에 대중 압박으로서의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공약이지만 중국이 반발하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추가 배치만 하더라도 중국이 북핵 대응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록 당위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윤 정부로서는 ‘안보리 제재 체제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한국으로선 자위적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추가로 확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관건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외교력에 여유가 없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대응에 얼마나 전념할지다. 이는 결국 한ㆍ미 동맹의 수준에 좌우된다. 차기 정부가 안보ㆍ민주주의ㆍ경제 등 다양한 현안을 고리로 한ㆍ미 동맹을 한층 강화해야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 북핵 대응을 견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참고(출처) : 박현주, 北 향한 방아쇠, 또 당기지 못한다...'중·러 버티기' 어떻게 푸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