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정치경제적 의미와 교훈: 자유주의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정세와 정책 2020-05호]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정치경제적 의미와 교훈:

자유주의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1. 서언

 우한에서 처음 발병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금은 전 세계로 퍼졌다. 20203월말 현재 전 세계 바이러스 확진자는 무려 70만 명을 넘었다. 처음에는 중국이 세계 최대의 집단 발병지였지만, 지금은 중국의 확진자 약 8만 명을 제치고 미국이 14만 명 정도로 단연 1위가 됐고, 이탈리아가 약 10만 명으로 2위에 올랐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1990년대 이후 전 세계를 휩쓴 세계화, 즉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개방적인 국제체제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혹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해지는 밀집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다음의 속 깊은 질문 역시 가능하다. 초기에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중국 우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우한에서 중국 전체로 순식간에 바이러스가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 전염병이 생성되고 전파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규명은 당연히 의학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한 모든 원인을 의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과거 사스를 비롯하여 중국에서 전염병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에서 발생한 병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의학 연구만을 통해 이런 질문에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2. 중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제 못한 이유

 우한에 전염병이 발생한 사실을 처음 확인한 사람은 우한 중심병원의 젊은 의사 리원량(李文亮)이었다. 작년 12월 중순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을 찾은 환자 7명이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점을 처음 관찰했다. 병의 전염성 때문에 확산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전 대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12월 말에는 동료 의사들에게도 알렸다. 이 이야기가 일반인에게 전해지기 시작하자 중국 당국은 리원량을 소환하여 조사했다. 그 때 기껏 취한 조치가 유언비어를 유포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였다. 리원량은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훈계서를 쓰고 풀려났다. 그 후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불행히도 리원량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2월 7일 별세했다.

 상황이 위와 같았음에도 중국 최대의 명절인 설날, 즉 춘제가 1월 24일부터 6일 동안 이어졌고, 그 사이 우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우환 바이러스 감염 환자는 작년 12월 8일에 처음 발견됐다. 날짜가 11월 중순으로 소급된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중국 질병통제센터가 새로운 전염병을 공식 확인한 날은 금년 1월 8일이었다. 한 달 이상 진실은 은폐됐다. 소수의 환자만이 있다고 간주, 환자에 대한 통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급기야 춘절 기간 무려 500만 명의 우한 시민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동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로써 중국당국이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당국은 우선 리원량의 중요한 관찰과 경고를 무시했다. 이어 우한 의료진 14명의 감염이 확인됐는데도 바이러스가 전염력이 약해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인민의 통제가 반드시 필요한 중국의 정치 상황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것은 그 자체로 체제의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병이 이미 퍼졌는데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그 결과 춘제 대이동 통제 기회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통계와의 싸움도 계속됐다. 확진자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고무줄처럼 변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중국당국이 발표하는 통계를 믿지 않는다. 최근에는 마치 전염병이 모두 잡힌 것처럼 선전하면서 외국인이 중국에 입국하는 것을 막고 있다. ​

3. 현대사회의 기본 조건과 언론의 자유

 민주국가에서는 우한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 힘들다. 리원량과 같은 인물이 하나만 나와도 그 사람의 주장은 삽시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 전염병 가능성이 있다는데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당국은 언론기관 혹은 시민들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고, 병에 대한 의학적 판단 역시 신속히 이루어지게 된다. 바로 이런 추론이 가능하기에 우한 상황과 바이러스 전파 문제가 단순한 의학 연구의 범주를 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확실히 보장됐다면 상황을 통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략 16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인간은 처음 계명되기 시작했다. 대를  이어 신분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사회의 모든 이해를 통제하는 최상위 계급인 왕과 귀족의 권한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 체제가 지속될 이유가 있을까? 만인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따라서 개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사회, 나아가 규칙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가 봉건주의를 대체했다. 이런 사회는 어떻게 작동하고 또한 유지될 수 있을까? 답을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미국 시민혁명의 이념적 지표인 미국 독립선언서만큼 현대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확실하게 정리한 문서는 아마 없을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신이 내린 양도 불가의 시민 권리를 생명권, 자유권, 그리고 행복추구권이라고 못 박고 있다. 권력을 시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정부는 그런 권리를 보호해야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것이 현대국가 및 정부의 존재 이유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시민은 자신들을 대신한 정부의 권력이 시민의 이해에 맞게 통제돼야만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지금은 너무도 익숙한 삼권분립이 등장한 배경이다.

 그러나 초기 지식인들은 권력분립에 만족하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시민들이 권력을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론 자유에 절대 가치가 부여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도 필요했는데, 어떻게 하면 시민의 경제적 번영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을까? 사려깊은 사람들은 소유권과 거래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장경제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봤다. 언론 자유를 통해 권력이 확실하게 통제되는 민주정치체제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시장경제가 동전의 양면을 이루며 현대국가의 핵심 기제가 된 이유가 분명해진다. 뒤집어 보면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국가는 현대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지속적인 번영도 기약할 수 없다는 의미다.

4. 중국 정치경제체제의 후진성

 중국도 신분과 특권의 세습제도, 즉 봉건주의를 붕괴시켜야만 했다. 서구나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공산주의를 통해 현대국가의 입지를 다지려 했다. 공산주의의 논리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산주의에는 다음의 결함이 있었다. 모든 경제 가치를 공유한다는 공산주의는 물론 경제 용어다. 생각이 그러했으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 기제인 소유권과 시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산혁명의 주역들에게는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공산주의에 맞는 정치체제는 어떤 것일까?

 자본론을 포함 공산주의 원전 어디에도 공산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공산혁명을 주도한 소련의 지도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우선 공산주의 이념을 대변하는 것이 공산당이었으므로 다른 정당의 존재 이유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유일 권력 기구인 공산당 내에서 의사결정 과정은 어때야 할까? ‘민주집중제’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포장된 공산주의식 정치체제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모든 인민이 대의원을 뽑아 인민대표대회를 구성한 다음, 여기서 정치국 위원이 선출되고, 20-30명의 정치국 위원이 6명 내외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뽑은 후, 이중 최종 한명이 선정되어 당을 영도하는 제도였다.​

 겉으로는 인민의 의견이 자연스레 모아져 위로 올라간다는 뜻의 민주집중제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초기 공산주의자들의 정치 아이디어가 포장됐다. 소련의 경우 제국이 붕괴된 후 민주집중제 역시 함께 사라졌지만, 놀랍게도 21세기 현재 중국에서는 같은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78년 개혁개방 후 중국의 경제적 약진에 발맞춰 중국의 정치체제 또한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1900년대 초 등장한 공산주의 정치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중국의 상황에서 정치적 효율성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한다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는 중국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의 기본 가치관과 통치 이념은 어떻게 현실화될까? 공산당 관료조직이 그것을 실행한다는 측면에서 이것 역시 구소련과 별 차이가 없다. 기본 원칙이 당에 의해 정해지면 공산당 세포조직과 중앙 및 지방 관료들은 그것에 맞게 행동하며 당이 지향하는 바를 현실화시킨다. 당의 지침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관료 등 집행 기구는 당연히 당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국 당국이 당의 지침에 반하는 견해를 통제하는 까닭이 분명해진다. 통계를 거리낌 없이 조작 왜곡하는 것도 이유는 같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은 해당 관료 능력의 기준이 됐다. 당연히 경제 관련 통계는 왜곡됐고 부풀려졌다. 이런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됐으므로 우한의 상황이 감춰지고, 그것을 알리려는 사람이 탄압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전국이 바이러스에 오염되자 뒤늦게 사태를 인정한 다음에는 우한 전체를 아예 봉쇄시키는 독재 권력의 초강수가 이어졌다. 유럽과 미국에서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번지자, 이번에는 중국 내에서 확진자가 빠르게 줄어든 것을 홍보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거의 잡힌 것처럼 행동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중국정부의 통계를 믿을까?

5. 코로나 사태의 정치경제적 파장: 자유주의의 훼손

 2001년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해였다. 세계화라는 용어는 소련이 멸망한 1990년대 초부터 등장했다. 하지만 세계화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중국이 세계경제에 가시적으로 편입되면서부터였다. 자유로운 수출이 가능해지면서 특히 중국 제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새로운 세계공급망(global supply chain) 형성이 가시화됐는데, 전문 용어로는 공급 혹은 노동 쇼크라고 부른다. 인류 역사상 중국처럼 대규모의 생산 가능 노동력이 세계경제의 공급 시장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는 의미다. 덕분에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상품이 세계시장에 공급될 수 있었다.

 사실상 두 개의 기제가 세계화의 핵심이었다. 하나는 상품의 자유로운 교역을 의미하는 무역자유화와 다른 하나는 돈의 원활한 국제적 순환을 뜻하는 금융자유화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런 세계화에 동참하는 국가는 시장경제를 견지해야만 하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민주국가로 변한다는 조건이었다. 미국은 이런 기대 하에 중국을 WTO에 받아들였다. 1978년 시작된 중국 개혁개방의 진척 정도를 봤을 때 시장경제의 확장은 시간문제로 보였고, 공산주의 정치체제 역시 변할 것이라고 미국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의 현실화가 어렵다는 판단이 서게 되자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우리는 그런 미국의 대중공세를 미중무역(경제)마찰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격은 많은 경우 중국경제가 과연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서 운영되는가에 대한 논쟁과 연계돼 있었다. 지적재산권 위반과 기술 도용, 정부의 기업에 대한 과도한 보조금 지급, 관치 금융의 폐쇄성, 중국기업과 공산당의 불분명한 관계, 과도한 무역흑자 유도 정책, 중국정부의 불투명한 경제 운용과 왜곡된 통계 자료 등 대부분의 쟁점이 시장경제 원칙과 관련이 있다. 결국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독재 정치체제 및 정부 주도 관리 시장경제가 자유무역 혹은 자본자유화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뒤집어 보면 세계화에 동참하는 국가는 국내외적으로 자유로운 시스템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위와 같은 사안이 본격적으로 쟁점화될 때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졌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바이러스 전파의 사회적 원인은 중국의 시대착오적인 공산주의 정치경제 시스템이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세계는 깊이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모든 거래를 감내하고 흡수할 수 있는 국내체제를 갖추지 못한 국가와 자유로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렇다면 극복 방안은 무엇일까? 중국이 세계 공급망 및 자유무역 질서에서 서서히 축출되는 것 이외의 대안이 있을까? 그것이 반세계화로 불리든 자유무역의 위축으로 불리든 상관이 없다. 원래 2001년 이후 세계화의 가장 큰 파도를 중국이 만들었으므로 중국 및 중국경제의 위상이 세계무대에서 축소되는 것은 논리상 세계화의 위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kskim@sejong.org

참고(출처) : http://sejong.org/boad/1/egoread.php?bd=2&itm=&txt=&pg=1&seq=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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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초기 대응이 잘 이루어졌다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처음 바이러스 반응을 보인 이를 면밀히 관찰하고 전염병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좋은 날씨에 맑은 공기를 쐴 수 있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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