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항공 및 방위산업은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고, 기술 진부화의 진전 속도로 인해 끊임없는 노력과 자원의 투자가 요구된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영국은 전투기를 비롯한 군용기를 자체적으로 개발, 생산했다. 항공기술을 민간 여객기 분야에 집중해 1949년 세계 최초로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는 쾌거도 이뤘다. 그러나 1976년 극심한 경제난으로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연구·개발 관련 비용을 대폭 삭감했고 이후 영국의 항공산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반면 프랑스는 전쟁으로 인해 항공산업이 무너졌고 공군 재창설을 위한 전투기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형국이었어도 국내 연구·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50년대 후반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 성공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이스라엘 승리로 6일 만에 끝내게 한 미라주 전투기는 프랑스 항공기술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전투기에서 우주선까지도 자체 개발이 가능해진 프랑스는 유럽 공동 여객기 사업까지 주도했다. 오늘날 이 사업을 배경으로 탄생한 에어버스는 여객기 판매량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서방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항공우주 분야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가 프랑스다.
올해 한국의 국방예산은 50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3년간 정부는 방위산업 혁신성장, 수출 산업화,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방위력개선비를 연평균 11% 증액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예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내 방산업체 실질 매출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국방예산 증액이 국내 연구·개발과 국산 무기체계 구매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위험부담이 존재하는 국내 연구·개발보다는 이미 완성된 고성능의 외국산 무기체계를 선호한다. 최근에는 개발이 이미 완료된 국산 무기체계까지 외면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1990년대에 육군은 입체적 작전수행을 목적으로 외국산 중형기동헬기를 도입했다. 이때 시도한 면허생산을 계기로 국내 항공기술이 축적됐고, 2010년엔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한 국산 기동헬기가 하늘로 비상했다. 국산 기동헬기는 방위사업청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국책사업으로 개발을 추진했으며 중소기업 등 국내 250여개 업체가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노후한 외국산 중형기동헬기의 성능 개량을 검토하면서 국산 헬기로 대체 가능하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생산돼 성능과 품질이 안정된 국산 헬기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해외 기종 대비 손색이 없는 국산 헬기가 자국에서 외면을 받는다면, 수출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는 국내 항공 방위산업 분야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며, 일자리 창출과 고용 증진이라는 국가 정책에도 역행한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궁극적 목적은 자주국방이고, 핵심 목표는 국산화다. 첨단 방위산업의 핵심인 국내 항공산업 육성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
최기일 | 건국대학교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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