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산업 꽃피워 소득 5만 달러 시대 열자
- 코로나19가 한국에 준 기회
코로나19 방역을 통해 한국이 의료기술 선진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감염병으로 인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의료 선진국 이미지는 깜짝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좋은 제품을 개발해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홍보해주고 있으니, 호박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격이다. 덩달아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기고 있다.
K방역으로 한국, 의료기술 선진국으로 인식되지만 국내 병원 의료장비 90% 이상 외국산인 게 현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의료기기산업 기반 갖춰 의료·공학 협업과 식약처의 의료산업 진흥 역할 필요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최종 평가는 이르지만, 중간 평가를 해보면 진단 키트 등 의료기기의 우수성과 원활한 공급이 큰 몫을 했다. 만약 진단 키트와 방호복 등이 제때 공급되지 않았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미국·유럽 등 다른 나라들이 허둥대는 큰 이유는 방역 물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산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제약산업이다. 제약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될 정도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낸다. 세계 제약산업 시장 규모는 약 1조 달러이다. 두 번째는 의료기기산업이다. 이것은 의료기술과 공학기술이 결합해 만들어 내는 산업이다. 요즘 병원에 가면 모든 진단은 검사장비가 해준다. 전 세계 의료기기 산업 규모는 약 5000억 달러다. 그런데 국내 병원에는 90% 이상이 외국산이다. 국산은 초음파장비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제조업 발달한 한국에 의료기기산업 유망
제약이 바이오산업의 꽃이긴 하지만, 진입장벽이 높다. 통상적으로 하나의 신약이 실용화되려면 개발 시작부터 10년간 약 10조원의 돈이 투입돼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개발에 성공하면 다음 단계는 세계 시장 진출이다. 글로벌 시장 개척도 지난한 일이다. 후발 제약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일과 같이 어렵다. 그러나 의료기기산업은 조금 다르다. 의료기기도 결국 전자기계다. 우리나라처럼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료 지식을 담아서 제품을 개발하면 된다. 의료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특수성이 있다. 우선 새로운 의료 제품이 개발되면 식품의약안전처(식약처)의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음에는 건강보험공단이 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해줘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제품이라도 보험 적용이 안 되면 시장 진입이 어렵다. 이 절차는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린다. 일반적으로 식약처는 높은 기준을 제시해 평가한다. 대부분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기준으로 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단번에 뛰어넘기 어려운 기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민 건강을 위한 절차이긴 해도 후발 주자에게는 너무 높은 진입장벽이다. 의료기기가 단순 전자제품이라 할 수 있는데도 국산화가 더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방역 성공은 식약처의 태도 변화가 주효했다. 식약처 관계자들은 1월 말 서울역 회의실에서 의료기기 제조회사와 회의를 했다고 한다. 아직 신종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정확히 인식되기 전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심상치 않다, 신속하게 방역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신종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를 줄 테니 진단 키트를 긴급하게 개발하라, 그러면 패스트트랙 심사를 통해 신속하게 판매 허가를 내줄 것이다. 규제 기관답지 않은 파격적 행보가 이번 방역 성공의 불씨가 되었다. 우리나라 의료산업에 희망이 있다. 평소 높은 허가 기준으로 기득권을 보호한다는 인상을 주던 식약처의 변화된 모습을 봤다. 식약처가 규제와 함께 의료산업 진흥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번에 허가받은 진단 키트도 정확도가 100%는 아니다. 그런데도 긴급 상황을 고려해 허가를 내줬다. 의료산업 진흥을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식약처의 의료산업 진흥 역할을 주문하고 싶다. 개발된 제품의 허가권을 가진 식약처가 신제품 개발의 ‘가정교사’ 역할을 해준다면,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신제품인 경우 평가 기준을 융통성 있게 적용해줘 품질 개선의 기회를 준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식약처가 의료산업 진흥의 가정교사가 된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 식약처가 의료산업 ‘가정교사’ 역할 해야
둘째, 의학과 공학의 긴밀한 국가적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의료 제품 선진국의 공통점은 연구하는 의사가 많다는 점이다. 제품은 공학자들이 개발한다. 그런데 의료기기 사용자인 의사들이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가장 잘 안다. 공동 협력을 통해서만 좋은 제품이 만들어진다. 현재 의학자와 공학자가 ‘소가 닭 보듯’ 하는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파격적 조치가 필요하다. 의학과 공학을 함께 배우는 의료연구 전문대학원을 세우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 의학자 50명, 공학자 50명을 함께 모아 가르치면 국민을 먹여살릴 인재가 나올 것이다. 셋째, 제도 개선이다. 이번에 찬사를 받은 방역시스템도 신속하게 허가를 내줄 수 있는 패스트트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패스트트랙을 확대해 신제품 개발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또 원격의료를 포함한 스마트 의료시스템을 도입하자. 이미 우리나라는 요소기술을 모두 갖고 있다. 제도적 장애물만 없어지면 제품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은 급물살을 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 ‘그린 뉴딜’을 제안했다. 의료기기 산업이야말로 그린 뉴딜의 중요 축이 될 수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다. 트럼프가 홍보해주는 이때가 의료기기 산업을 일으킬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5만 달러 국가로 가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
- 성공적 코로나19 방역국만이 개발할 수 있는 이동병원·위치정보방역시스템
의료산업은 의학 지식을 활용한 산업화를 말한다. 그래서 콘텐츠는 의학지식이 되지만 실제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공학 제품이 된다. 이번에 코로나19가 지나가도 몇 년 후에 다른 감염병이 나타날 것이다. 이제 현대 사회에서 감염병 대응은 국가의 일상적인 조치로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KAIST에서는 감염병 방역을 위해 긴요한 제품들을 개발하기로 했다. 두 가지를 소개한다. 하나는 감염병 방역을 위한 ‘이동병원’이다. 감염병은 특정 지역에서 병원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에도 특정 지역의 병원 수용 능력은 1000명 정도인데, 200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넘치는 환자는 인근 지역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그런데 이 환자를 운송할 구급차가 부족하다. 사용한 구급차는 소독을 위해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음압설비와 산소호흡기 등 방역시스템을 갖춘 차량이 있다면, 환자 운송은 물론 이동병원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이동병원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의사가 옆에 없어도 환자를 돌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이동병원 차량을 500대만 구비하고 있으면, 어느 지역에서 많은 환자가 발생해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통신 위치정보를 이용한 방역 시스템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76조 2에 따르면 환자 또는 의심되는 사람의 통신 위치정보를 방역에 활용할 수 있게 돼 있다. 현재의 위치 정보는 실외에서만 작동한다. 실내에서는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최근 건물의 층수까지 정확히 알아내는 실내 위치정보 시스템이 개발됐다. 이 기술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내가 확진자와 어느 지역 어느 층에서 겹쳤는지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백화점에 갔다. 그런데 몇 층 어느 코너에 가까이 갔더니 나의 휴대폰에 경고음이 울린다. 그곳에는 하루 전에 확진자가 한 시간 머물다 갔다는 문자가 온다. 확진자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간편한 시스템이다. 두 가지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19를 먼저 경험하고 성공적으로 방역한 나라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제품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전 세계가 줄 서서 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