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안보전략硏, 제1회 용산학 포럼 개최…”용산의 軍史적 의미 되새겨 시민 공원에 반영할 것”

– 김천수 실장 “용산기지에 용산 없어…일본군이 붙인 ‘신용산’ 명칭 재고해야”
– “121병원, 일방적으로 철거해 일본총독 관저 터로 만들어도 좋은지…의미있는 활용 방안 논의해야”

25일 용산포럼 회원들이 첫 모임을 가졌다.[사진=녹색경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 통일안보전략연구소(소장 강우철)는 25일 ‘용산기지 내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제1회 용산학 포럼을 개최했다.

용산학 포럼은 군 출신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그간 미군기지 주둔으로 인해 깊이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던 용산지역의 군사적 의미를 연구하고 장차 만들어질 용산공원에 도움을 준다는 취지로 이번에 첫 모임이 성사됐다.

이번 포럼을 개최한 통일안보전략연구소의 신종태(예비역 육군 대령) 박사는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뺐겼던 주권을 다시 찾아오는 우리의 뼈 아픈 역사를 국민들이 되새기면서, 그런 의의를 가진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 뜻을 모아서, 용산 시민공원이 조성될 때 반영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 우리 포럼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용산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요충지역으로 오랜 세월 군사기지였던 금단의 땅이다.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에 따라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용산 기지의 군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장차 조성될 공원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용산 기지의 면적은 약 90만평으로 여의도면적(8만평)의 10배가 넘는다.

용산 기지[사진=국토교통부/용산문화원]

이날 발제를 맡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용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용산은 지난 1906년 8월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이 118만평의 부지를 확정하고 군사기지를 구축한 지 100년이 넘었다”며 “실제로 이 지역은 군사기지가 있다보니 아직도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 많고, 발굴해야 할 유적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천수 실장은 “용산기지 내 용산은 없다”면서 “예전에는 원효 마포 대교 사이를 옛날에는 한강이 아닌 용산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러일 전쟁 이후 이곳이 군사기지가 되면서 그 이름이 사라지고 새롭게 일본군이 이름 붙인 ‘신용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신용산이라는 이름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또한 “용산기지 내 121(원투원)병원이 처음엔 북부에 있다가 지난 2014년 약 1만6000평의 방어 1등급 건물로 지어졌다. 미군 병원 특성상 계속 점검을 받기 때문에 튼튼한데 저것을 어떻게 의미있게 활용할 지 논의할 만하다”면서 “현재는 일방적으로 저것(121병원)을 철거하고 (일본)총독관저 터로 만든다고 한다. 이런 토론을 통해서 잘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해병대 출신으로 용산기지내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용산지역의 향토사학자다.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와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의 저자이며 사진과 지도, 도면으로 본 용산기지의역사 시리즈를 공저한 바 있는 용산지역사의 전문가로 잘 알려져있다.

강우철 통일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정례화된 모임을 통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용산의 군사(軍史)적 의미를 깊이있게 연구하고, 국민들과 함께 공유하도록 발전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전쟁기념관에서 바라 본 구(舊) 일본군 병기지창 무기고 자리[사진=녹색경제]

참고(출처) : 김의철, 통일안보전략硏, 제1회 용산학 포럼 개최..."용산의 軍史적 의미 되새겨 시민 공원에 반영할 것", 녹색경제신문, 2021-02-26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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