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올해 들어 12차례 미사일 시험 발사를 단행했다. 김정은 집권 뒤 가장 잦은 횟수다. “한국은 세계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핵무기 등에 대해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몇 년 전 한국에 머물렀던 외신기자의 말이다. 북한 미사일을 쐈다는 기사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는 기사가 더 충격이 크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그런데 이번 미사일은 왜 언론에서 호들갑스럽게 보도를 했을까? ICBM 그게 뭐길래 며칠째 톱 뉴스를 장식하는가? 북한이 넘었다는 ‘레드라인’은 무엇인가?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했다.
ICBM, 그게 뭐길래?
ICBM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이다. 말 그대로 대륙을 넘어 적을 공격하는 핵미사일을 말한다.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을 넘나든 공격이 가능한 미사일이다. 사정거리 5,500㎞ 이상의 탄도미사일은 대기권 밖을 비행한 뒤에 핵탄두로 적의 전략목표를 공격한다. ICBM은 전략폭격기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함께 전략핵무기의 한 축이다.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하는 경우 발사준비에 걸리는 시간이 짧아 가장 위력적인 전략핵무기로 꼽힌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하여 5개국이 ICBM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4일 ICBM으로 추정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후 2시 34분쯤 평양 순안비행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고도는 6200km 이상, 비행거리는 약 1080km로 탐지됐다. 정상 각도 (30~45도)보다 높여 쏘는 고각으로 발사됐는데, 만약 정상 각도로 쐈다면 예상 사거리는 1만5000km로, 북한에서 미국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까지의 거리인 1만1000km를 충분히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ICBM 발사는 지난 2017년 이후 4년 4개월 만이다.
신형 ICBM 화성-17형은 무엇?
북한이 발사에 성공했다고 강조한 ICBM은 지난 2017년 발사했던 화성-15형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화성-17형이다. 화성-17형은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발사체 길이는 22~24미터, 바퀴 축이 11개인 이동식 발사 차량에 실려 있었다. 발사 차량 바퀴 축이 9개였던 기존 ICBM급 미사일 화성-15형보다 바퀴 축이 2개 늘어났다. 미국이나 중국의 ICBM과 비교해도 발사체 길이와 직경이 더 커서 이른바 괴물 ICBM으로 불린다. 핵무기 2~3개를 동시에 실어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시를 동시 공격할 수 있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2월 27일과 3월 5일, 16일 세 차례에 걸쳐 북한의 신형 ICBM인 화성-17형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출력을 줄여 발사한데 이어, 지난 16일 최대 출력으로 쐈지만, 시험 발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한미 정보당국은 20km도 못 올라가고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보통 신형 미사일을 쏜 다음 날 대성공을 거뒀다는 대대적인 보도를 하는데, 당시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완전히 침묵했다.
그리고 3월 24일. 북한은 다시 ICBM을 발사했다. 북한이 발사한 화성-17형은 정점고도 6,258.5km까지 상승하며 거리 1,090km를 날아갔고 비행시간은 1시간 7분 32초였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제원은 한미일 정보당국의 분석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형 화성-17형 발사에 성공했다는 영상이 다음날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됐다.
탑건? 강남스타일?…블록버스터급 홍보 영상
‘설마 이게 북한에서 만든 영상이 맞냐?’는 오해까지 불렀던 이 영상은 무려 ‘조선 중앙TV’에 방송됐다. 거대한 미사일을 배경으로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가죽 점퍼와 선글라스 낀 김정은이 등장한다. 시계를 보다가 선글라스를 벗고 비장한 표정으로 미사일 발사를 지시한다. 마치 영화처럼 ‘발사’ 구령 장면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드론 촬영에 현란한 교차 편집까지 마치 B급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했다. 그간 조선 중앙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발사 장면이다.
외신들도 이 영상에 주목했다. 영국 가디언은 ‘김정은, 북한 미사일 보도에서 탑건 대우받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영상과 관련해 각종 밈(인터넷에서 패러디나 재창작의 소재로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이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할리우드 영화 ‘탑건'(1986)이나 K-팝 ‘강남스타일’을 따서 ‘탑 김정은’이나 ‘평양 스타일’로 비유하는 패러디가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북한이 ICBM을 발사해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편 이 뉴스가 국영 TV에서 방송되는 방식 역시 당혹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 2017년 공개했던 화성-15형 발사 영상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화려해진 촬영 기법과 달리 실제 발사 장면의 노출 장면은 과거보다 짧았다. 화성-15형 발사 장면에는 정상 발사됐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발사 과정을 2분 이상 길게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영상에서는 20~30초 단위로 지상 장면과 항공장면이 편집돼 실세 발사 장면은 짧은 편집된 영상으로만 확인이 가능했다.
미사일 기종 논란…’짜깁기 의혹’까지
이런 의혹과 더불어 군과 정보당국은 이번에 발사한 발사체가 화성-17호가 아닌 화성-15형이라고 결론 내렸다. 실제론 화성-15형을 쏘고, 영상은 다른 날 찍어 놨던 화성-17형 발사 장면이랑 짜깁기해서 내보냈다는 것이다. 군과 정보당국이 그렇게 결론을 내린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그림자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시각은 오후 2시 34분이다. 김정은 사진이 찍힌 시간도 낮 시간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그림자가 짧아야 하는데, 사진 속 김정은의 그림자는 자신의 키보다 훨씬 길다. 그렇다면 오전 이른 시간이나, 오후 늦은 시간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두 번째는 날씨다. 지휘소 안에서 김정은이 바라보는 영상은 흐린데, 화성-17호라고 주장하는 발사 장면의 날씨는 너무 맑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가들마다 의견 차이가 있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항공우주기계공학부 교수는 “이런 증거만 갖고 화성-15형을 17형이라고 조작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북한이 최고 지도자가 주관하는 이른바 ‘1호 행사’를 완전히 조작한 전례는 거의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
속이면서까지(?) 화성-17호를 쏴야하는 이유? 군 정보당국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왜 영상조작까지 하며 화성-17형 발사 성공을 홍보한 것일까? 대외적인 이유와 대내적인 이유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신형 ICBM의 발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데, 실패한 것이니 빠른 시간 내에 만회하는 발사를 해야 하는데 화성-17형은 다시 발사할 정도로 준비가 안 돼 있어 화성-15호로 마치 17형을 발사했다고 알려서 외부에는 신형 ICBM을 발사할 능력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 “김정일대학 옆 웅덩이, 지붕 날아가…2명 사망 첩보”
대내적인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국가는 신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경우 발사 실패 시 민간인 피해 등을 우려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민간인 피해보다 인민에 대한 홍보에 더 방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평양 시내에서 북쪽으로 불과 10km 떨어진 평양순안국제공항에서 ICBM 시험 발사를 감행했다. 하지만 화성-17형은 20km도 날아오르지 못하고 공중 폭발했다.
국방부는 국회 비공개 보고에서 미사일 파편이 평양 인근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31일 보도된 SBS 8시 뉴스에 따르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사일 파편으로 평양 시내 주요 시설물이 파손됐다고 말했다. 특히 순안비행장으로부터 동남쪽 직선 방향으로 9.5km, 옥류관으로부터 북쪽으로 12km 지점에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대학 옆에 큰 웅덩이가 생겼고 대학 건물 지붕도 날아갔다는 것이다. 폭발로 2명이 사망했다는 첩보도 입수됐다고 밝혔다. 체면을 완전히 구긴 북한 지도부가 민심 이반을 막으려 발사 성공 확률이 높은 15형을 8일 만에 급히 쏘고서 17형을 쐈다고 자랑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ICBM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검증된 바가 없다. 사정거리 면에선 ICBM의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고각 발사 실험만 해 왔다. 정상 각도는 30-45도로 발사해야 하는데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 대기권으로 들어오는 재진입 기술에 대한 검증은 아직 되지 않았다. 대기권 재진입 시 대기권에 튕겨 나가지 않도록 음속 20배 수준의 속도, 자세 제어 궤도 유도 기술과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 대기권에 진입한다고 해도 1만도 내외의 마찰열을 견뎌야 하는데 탄두부의 내열합금 기술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쏜 ICBM이 화성-17형인지, 15형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15형이든 17형이든 이번에 쏜 ICBM이 더 멀리 가고, 높이 올라갔고 과거보다 기술적으로 한 단계 올라선 것은 기정사실이다.
‘레드라인’을 넘었다? 어디까지는 괜찮은 건데?
국제 관계에서 레드 라인은 통상 ‘넘지 말아야 할 선’이나 ‘넘으면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말한다. 북한의 이번 ICBM 발사를 두고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북한에 대한 레드라인이 ‘단거리 미사일은 되고, 장거리 미사일은 안 된다’는 것처럼 선 긋듯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통상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탄두 ICBM을 ‘레드라인’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서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 위협에 대해 “나는 레드라인을 긋는 것은 안 좋아하지만 행동해야 한다면 행동한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레드라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 라인이라고 생각한다”며 구체적으로 레드라인을 언급한 적은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의 이 언급을 두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레드라인이다’, ‘레드라인의 전략적 모호성을 버렸다’, ‘레드라인을 어겼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빠졌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북한 스스로도 ‘레드라인’을 ICBM 발사로 보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18년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하지 않겠다”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북한은 남북미 화해 분위기 속에 핵실험과 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한 뒤, 남북미 관계 교착 국면에서도 이 마지노선은 유지해 왔다.
어쨌든 이번 ICBM 발사의 공식화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유예 조치가 폐기됐다는 건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vs 2022년…5년 전과 닮은꼴?
문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발사가) 2017년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서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발사 다음날인 25일 ‘화성-17형’ 성공적 발사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5년 전 ‘화성-15형’ ICBM 발사 뒤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당시 기사와 거의 비슷해 눈길을 끌었다.
2017년과 올해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11차례에 걸쳐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핵과 미사일 개발로 북한은 국제적 고립 속에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결의했다. 북한의 2017년 11월 29일 ICBM 도발 때문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2397호는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할 경우 대북 석유 수출량을 축소할 것임을 공약한 ‘트리거’ 조항을 도입했다. 즉, 북한의 이번 ICBM 발사에 따라 안보리 회의가 열릴 경우 추가 대북제재가 자동적으로 논의된다는 것이다. 당시 안보리의 제재는 소원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던 북한은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복원에 나서더니 우리 특사단 방북을 활용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연결 시켰다. 눈에 띄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며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중 우호관계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 [취재파일] 북한 외교의 승리…미·중 경쟁 속 운신 폭 넓힌 북한
하지만 지금은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가 달라졌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의 진영 대립 국면에서 북한은 러시아와 반미, 반서방의 손을 들어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개 표명하기도 했다. 지난 1월 북-중 열차 운행이 다시 시작된 가운데, 북-러 간 육로 교류 재개 동향 또한 일부 관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전략연구실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ICBM 발사와 같은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이에 반발해 강력한 대응을 도모하는 한미일 등의 결속을 강화하게 되는데 이는 역으로 북중러의 결속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모든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유엔 안보리에서 추가 제재 논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이번 북한의 ICBM 발사 관련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한 15개 나라가 북한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강화는 북한 주민을 위협할 것”이라며 추가 제재는 물론 안보리 차원의 언론 성명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북한의 ‘노림수’를 보는 관점
북한의 이번 ICBM 도발의 목적을 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가동된 직후 ICBM 도발을 한 것을 두고는 새 정부의 대북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분석하는 시각이다. 과거 새정부 출범 때마다 구사한 ‘벼랑 끝 전술’ 카드처럼 5월 10일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긴장을 고조시켜 기선을 제압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장영근 교수는 “강력한 대북 공약을 내세우며 선제 핵타격을 언급한 윤석열 당선인을 향한 선제 공격”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핵 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제재를 풀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관심 끌기’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중러 긴장관계까지 이어지면서 북한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에서 배제돼 왔다. 사실상 이번 미사일을 통해 미국의 관심을 끌고, 필요한 협상을 이끌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북한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이 없었고 사실상 오바마 행정부 때의 ‘전략적 인내’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16년 1월 12일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1월6일)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올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는 의미다.
오바마 정부보다 적극적인 대북 관계에 나섰던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에는 현상유지 전략으로 돌아섰다. 이어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는 말로는 ‘조건 없는 대화’를 내걸었지만, 아무런 유인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실상 ‘전략적 인내’로 회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의회 연설에서 북한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더 이상 변화할 여지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모라토리엄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2018년 4월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본인이 한 약속이긴 하지만 합의나 계약은 아니다. 장영근 교수는 “핵과 ICBM을 포기하겠다고 한 것은 북한의 일방적인 선언인 만큼 ‘파기’가 아니라 ‘철회’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파기든 철회든 북한의 도발이 위협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철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입장 변화를 찬찬히 살펴볼 여지가 있다.
지난 1월 북한의 의중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해석을 살펴보자.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쓴다고 본다면 그것은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SBS 안정식 북한 전문기자는 “이 주장을 사실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미국과의 대결이 장기적이고 북한의 궁극적인 과제가 힘을 키우는 것이라는 주장은 눈여겨볼만 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미국의 장기적 위협’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면, 핵 능력을 부단히 발전시키는 북한의 행보가 단순한 대미 협상용이 아니라는 북한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실질적인 대북 정책은 이를 전제로 수립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 [취재파일] “미국의 장기적 위협 대처해야”…북한은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4월엔 북한발 긴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10주년을 맞이해 강력한 무력 도발을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또 4월은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한미연합훈련도 예정돼 있다. 북한은 2017년 이후 중단했던 지하 핵실험을 재개하기 위해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폐쇄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복구하는 정황이 포착된 건데, 올해 안에 핵실험 재개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 북한이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이상할 상황이 아니다.
[구성: 장선이 기자 /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
참고(출처) : 장선이, [뉴스쉽] 북한은 뭘 믿고 '레드라인'을 넘었을까?, SBS뉴스, 2022-04-02 09: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