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하늘을 헤집고 다닌 북한의 무인기로 안보 공백 논란이 거세졌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북한의 무인기 도발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평한다. 오히려 김정은 접근 후 10년 넘게 장기 계획을 세우고 비밀리에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김정은 집권 초인 2012년 1월 당시 군부 핵심인사들과 함께 서부지구 항공구락부를 방문했다. 김정은의 첫 군사훈련 참관 일정이었다. 당시 김정은이 참관했던 훈련이 프로펠러형 무인기 조정 경기였다. 집권 후 첫 군사훈련 참관지로 무인기 부대를 택했을만큼 무인기에 공을 들였다는 의미다.
당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영상에는 프로펠러가 달린 약 2m 길이의 무인항공기 동체가 또렷이 담겨있다. 색상이나 외형에서 일부 차이가 있을 뿐 구조나 운용원리는 최근 북한이 남한에 보낸 무인기와 같은 것이다.
이후 김정은은 2013년 3월 초정밀 자폭형 무인탁격기 훈련을 참관하고, 김정은은 “남반부 작전지대의 적 대상물 좌표들을 빠짐없이 장악해 무인타격 수단들에 입력시켜 놓으라고 지시했다. 타격기들의 비행항로와 시간을 적 대상물이 도사리고 있는 남반부 상공까지의 거리를 타산해 정하고, 목표 타격 능력을 검열해봤다 적들의 그 어떤 대상물도 초정밀 타격할 수 있다는 게 확증됐다.”고 주장하며, 이미 10여년 전에 무인기를 활용한 주요 시설 타격 계획은 물론 실현 가능성까지 검증했다는 뜻이다.
북한은 10년 넘게 준비한 무인기 프로젝트를 철저히 은폐해왔다. 북한군이 보낸 무인기는 국내에서 2014년 발견됐다. 명백한 북한의 무인기였음에도 북한은 당시 “남조선의 자작극”이라고 발뺌하였다.
또한 2015년 11월 무인기 타격 실험을 ‘무선조송 모형항공기 경리라며 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소개하기도 하다. “전국 도 대항 체육대회에서 항공체육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으며 가까운 앞날에 좋은 결실을 보게 될 것이라 보도하였다.
2014년 6월 김정은은 북한군이 만든 급강하 물미끄럼대(워터슬라이드) 생산 공장을 방문, 군이 놀이시설용 미끄럼틀을 만든다는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때 정보 당국은 “무인기 등을 개발하기 위한 소재 공장을 놀이시설 생산공장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워터슬라이드에서 사용되는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수지는 자동차 군용품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소재이기 때문에 북한이 당시 무인기 소재로 활용했을 수 있다. 다만, 북한이 2017년에 일반적으로 무인기에 사용되는 탄소복합재료를 개발했다고 주장한 만큼 현재는 이런 신소재를 적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실제로 김정은은 2017년 8월 국방과학원 산하 화학재료연구소를 방문해 최첨단 재료인 ‘3D 탄소/탄소-탄화규소’ 복합재료를 연구 개발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2018 평창 올림픽이 끝난 그해 8월 정권 수립 80주년을 맞아 집단체조공연을 새롭게 선보이며, LED 드론을 동원해 ‘빛나는 조국’이란 무구를 공중에 구현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당시 올림픽 오륜기와 평창 겨울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을 연출한 드론 공연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평도 있다.
이후 열벙식을 비롯한 주요 기념행사에 드론을 동원하는 모습을 빈번히 노출했다.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를 기념해 진행한 야간 열병식에서 ‘오각별’과 지난 4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선 ‘노동당 심볼’을 무인기로 공중에 구현하며 드론 관련 기술을 과시하였다.
전문가들은 몰래 기술력을 축적해온 북한이 무인기를 실제로 투입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꼽는다. 우크라이나 군이 민간 무인기 전문가를 모아 ‘아에로로즈비드카(공중경찰)’라는 항공정찰부대를 만들어 정찰뿐 아니라 공격 작전까지 성공시키면서, 무인기의 위력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북한의 대형 무인기 개발 정황도 포착되었다. 미국 방위산업 전문매체는 평안북도 구성시방현 공군기지에서 중국산 무인공격기 차이훙(CH)-4와 흡사한 장거리 체공형 무인기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1970년대 북한 당국이 일본에서 무인기를 도입하려 했던 정황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중국산 D-4 무인기를 최초로 입수했고, 이를 토대로 1990년대 초반부터 방현-1 방현-2 무인기를 자체 개발 및 생산했다.
북한은 최근까지 중국 러시아 이란 시리아에서 관련 기술을 획득해 무인기 개발을 지속해왔으며, 현재 300~400대에서 최대 1000대의 무인기를 운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무인기 도발로 무인기 전투가 잠재 위협이나 일종의 ‘깜짝쇼’가 아닌 실제 위협이 됐음이 증명됐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